즐거운 우리집
 
 

 

 

          「정신적 고려장」

 

 

 

                                                       박서림 작   정유일 연출

 

 

 (M)            주제가

 ANN    -

 (M)            OUT

 

 노인           (복덕방) 이그 쯧쯧쯧 이럴 수가 있나!

 할아           아니 여보게, 뭘 혼자 혀를 차고 이러는 게야?

 노인           (한숨) 이럴 수도 있구먼 그래.

 할아           아, 이봐! 뭘 가지고 그러느냐니까!

 노인           자넨 이 신문 기사 읽어 보지도 않았나?

 

 (E)            신문지.

 

 할아           아니 무슨 기살 가지고 이러는 게야?

 

 (E)            내밀며,

 

 노인           여기. 이것 좀 읽어 봐.

 

 (E)            펼치고,

 

 할아           아니, 이 신문은 오늘 온 것도 아니잖아?

 노인           며칠 전에 온 건데, 무심히 들쳐 봤다가 다시 읽어보지 않았겠나.

 할아           대체 무슨 얘기야?

 노인           직접 읽어 보면 될 게 아닌가?

 할아           어디....

 

 (E)            펼치며,

 

 할아           (읽는다) 노인들의 소외감을 달랠 길은 없나...에이 흔해 빠진 소릴 가지고 뭘 그래!

 노인           나도 처음엔 그저 흔해 빠진 얘긴 줄로만 알았어요.

 할아           근데?

 노인           자세히 읽어 보니 예상치도 않았던 얘기가 실려 있더라니까.

 할아           예상치도 않았던 일?

 노인           우리처럼 이런 변두리 지역에 사는 늙은이들과 전혀 환경이 다르더라니까.

 할아           어떤 노인들이?

 노인           아파트에 사는 노인들.

 할아           오, 아파트에 사는 노인들....

 노인           아 어서 그 기사를 읽어보라니까!

 할아           어디.

 

 (E)            다시 펼치고,

 

 할아           (읽는다) 다음 글은 어느 아파트지역에 사는 어느 할머니가 본사에 보내 온 글입니다. 이 할머니는 그 동안 아파트 생활에서 직접 보고 느낀 점 등을 세상에 알려서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노부모들을 보다 정성껏 모셔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보낸다는 편지와 함께 이 글을 보내 오셨습니다.

 노인           아, 본문을 읽어 보라니까!

 할아           (읽는다) 새벽 다섯시, 이슬이 곱게 깔린 풀잎을 스치며 안개 자욱한 우장산 약수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노파           (이어서 읽는다) 여기저기 조잘 대는 산새 소리가 내 귀에 슬픈 여운을 남깁니다. 내가 아파트 큰 아들 네 집으로 이사 온 지도 벌써 두어 달이 넘었나 봅니다. 이슬에 젖은 풀잎에 앉아 생각해 봅니다.

 할아           (이어 읽는다) 아파트란 급속이 밀려온 핵가족의 온상이며 노인들에게 소외감을 안겨 주고 무료하게 만들어 주는 곳임을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노파           직장에서 돌아온 젊은 아빠들이 유모차를 끌고 다니며 저먹이를 돌보거나 놀이터에서 어린이를 보살피고 엄마들은 여기저기 모여서 얘기꽃을 피우는가 하면 늙은 할머니들은 직장에서 시달리던 아빠가 피곤하겠다고 가슴을 조입니다. 한국 아닌 서양 어느 나라에 나가 사는 느낌을 주는 아파트생활입니다.

 할아           으흠...

 노인           그건 보통이야. 다음을 읽어 봐 어서.

 할아           (읽는다)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살았다는 한 할머니는 큰 며느리의 구박에 견디다 못해서 귀국했다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스물 일곱에 호로 돼 가지고 새우젓 장사하며 키운 아들이 아내를 얻자마자 변해 버렸다고 합니다. ....

 노파           모였던 할머니들이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칩니다. 비록 장모는 사위 월급이 얼마인지 알아도 시어머니는 아들 월급액수를 모릅니다.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니 6시 30분, 아직도 아들 내외는 잠들어 있습니다.

 

 (M)            IN~B.G

 

 노파           조용히 문을 열고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들어가야 하는 내 처지란 처량하기만 합니다.

                  냉장고 속엔 음식이 들어 있건만 배가 고파도 제멋대로 못 먹는 시어머니들...어린 것들은 너무 많이 먹어 영양과잉이 오히려 염려스러운 데 며느리 눈치 보느라 모자간에 따뜻한 대화 한번 제대로 못하는 내 신세가 서글프기만 합니다. 정신적인 고려장을 당하고 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요? (울먹이며) 어떻게 외로움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M)            UP~FO

 

 할머           에미야 이것 좀 먹어라.

 모              아니 어머님!

 할머           자 어여 먹어라.

 모              아니 왜 자꾸 절 주세요?

 할머           아냐, 난 많이 먹었으니까 어여 먹어!

 모              왜요, 간이 안 맞으세요?

 할머           간이 안 맞는 게 아니라 너도 좀 먹어야지 나만 먹으라면 써?

 모              전 벌써 여기....

 할머           아 글쎄 먹으라면 먹는 거예요!

 부              원 참 어머니두...아 어련히 알아서 먹을까 봐 그러세요.   

 상희           호호 엄마가 나한테 맛있는 반찬 주시는 것 같다.

 상수           정말 할머니는 꼭 엄마를 어린애처럼 대하세요.

 할머           그럼 어떠냐! 엄마는 내 딸이나 마찬가진데...

 상희           엄마가 왜 할머니 딸이에요? 며느리지?

 할머           난 딸처럼 생각되는걸! 엄만 날 꼭 친정어머니처럼 대해 주구...

 모              참 어머님두. 호호.

 할아           허허허.

 할머           아니,영감은 왜 웃으세요? 내가 에미한테 이러고 있는 게 유치해 보이세요?

 할아           누가 유치해 보인대나?

 할머           아니 근데 왜 웃느냐구요.

 할아           원 난 웃지도 못하나?

 할머           글쎄 왜 웃으세요!

 할아           임자.

 할머           왜 그러세요.

 할아           내 아까 신문에 난 얘기를 들려 줬더니 그래서 에미한테 고기 만찬을 주고 그러는 거겠지?

 할머           그래요. 에미가 하도 고마워서요!

 모              어머님도..

 할머           나 그 얘기 듣고 말이다. (울먹인다)

 모              아니...

 할아           임자, 왜 우물우물허누? 응?

 할머           아파트에서 답답하게 사는 노인들에 비함 난 얼마나 호강하게 사는지를 생각하니 말예요.

                  그만 에미가 고맙구 미안해서 눈물만 자꾸 나지 뭐유?

 모              아이 어머님!

 부              (함께) 어머니...

 모              제가 만일 어머님께 잘해 드리는 거라면 그건 어디까지나 어머님께서 가르쳐 주신 건데 뭘 그러세요? 제가 처음 시집왔을 때 할머니께서 계시지 않으셨어요? 그 때 어머님께서 할머님께 얼마나 자상하게 보살피셨는지 아세요? 전 그저 그걸 배웠을 뿐이에요.

 할머           옛날 부모님께 극진한 효성을 다한 이들두 자식 며느리한테 구박받는 늙은이들이 얼마나 많으데 그래!

 할아           그래. 그건 임자 말이 옳아요.

 부              이 사람이 어머니께 잘해 드리는 건요, 어머니를 위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요,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러는지도 모릅니다.

 할머           아니 건 또 무슨 소리냐?

 부              아이들 보는 앞에서 시부모님 잘 모셔야 앞으로 시어머니 되면 대우를 받을 거거든요.

 모              호호 네 그래요. 제 속셈엔 그런 계산이 들어있어요 어머님!

 할머           원 별 소리를 다 듣겠구나!

 할아           허허, 그런 일면이 있긴 있을라...

 부              효자가 효자를 낳는다지 않습니까.

 할아           상수야.

 상수           네.

 할아           너 알겠냐?

 상수           염려 마세요. 저 방금 어머니 앞에서 할머니께서 눈물을 지으시는 광경, 평생 잊지 않을 거예요. 저 앞으로 장가들면 정말 어머니께서 기뻐서 눈물 흘리실 만큼 효도를 할 거예요.

 모              아이구 얜....

 상희           저두요!

 부              상희 넌 친정어머니 위하다가 시어머니에게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상희           에이 똑같이 효도할 거예요.

 할머           그래 그래.

 할아           허허 말만 들어두 흐뭇하구나. 허허허.

 할머           에이그, 모두 우리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할아           누가 아니래? 자기도 언젠가는 시부모가 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런 일은 없으련만....

 할머           그러게나 말이에요.

 할아           허허허.

 

 (M)            -

 

 

                              KBS <즐거운 우리 집> 테입에서 채록 8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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