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우리집
 
 

 <즐거운 우리 집> (89/2/17)

 

 

       「빈 골짜기」

 

 

                                                            박서림 작  임영웅 연출

 

 (M)            주제가

 ANN    -

 (M)            OUT

 상수          (밖에서) 얘 상의야. 문 열어.

 상희          아 오빠다. 잠깐만 기다려.

 (E)            신 끌고 가며,

 상희          오빠, 왜 이렇게 늦었어?

 상수          그렇게 됐어.

 (E)            급히 문 여닫는다.

 상수          고모 돌아오셨지?

 (E)            대문 닫으며,

 상희          응, 오빠가 제일 늦은 거야.

 상수          다녀왔습니다.

 모두          (적절히 이제 돌아오느냐고)

 부             왜 이렇게 늦었냐? 늦거든 전화라도 하지.

 모             전화 왔었어요.

 부             그랬어?

 고모          어디 갔다 온 거니?

 상수          친구 집에요.

 모             밥은 먹고 왔니?

 상수          네 먹었어요.

 상희          잘  채렸어?

 상수          보통...먹는 게 문제니?

 고모          친한 친구니?

 상수          네 서로 통해요.

 할아          얻는 바가 많은 모양이구나.

 상수          네 그 친군 조상에 대한 자랑이 대단해요.

 할아          조상이라니? 성이 뭔데?

 상수          서씨오, 달성 서씨(達城徐氏)라던 데요?

 할아          오 달성 서씨. 명사들을 많이 배출한 집안이지.

 상수          자기는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 선생의 자손이라던 데요.

 할아          오 서거정 선생!

 부             서거정 선생이면 유명한 분 아닙니까?

 할아          명 문장가라 할 수 있지. 자랑할 만해.

 상수          필원잡기(筆苑雜記)라는 저서가 특히 유명하다면서요?

 할아          그래 그 책은 나도 읽은 바 있다.

 할머          읽은 적 있으세요?

 할아          응. 지금도 그 중의 훌륭한 말씀들이 잊혀지지 않는 게 있는걸.

 상수          어떤 말씀인데요?

 할아          그 전에 묻겠는데 네 친구 성격이 어떠냐?

 상수          한마디로 포용력이 있어요.

 할아          포용력이 있다.

 상수          네 그래서 친구도 많구요.

 할아          으음.

 상수          저도 그 도량이 마음에 들어서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할아          그렇다면 조상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는 셈인걸.

 할머          아니 어떤 면에서요?

 할아          서거정 선생의 허곡기(虛谷記) 곧 빈 골짜기라는 글에 뭐라고 했는가 하면

 할머          네.

 할아          하늘과 땅이 빈 곳이 없으면 많은 형체들을 수요할 수 없고, 강과 바다가 빈틈이 없으면 많은 시냇물을 받아들일 수없으며, 산 수풀이 빈 곳이 없으면 뭇 나쁜 것들을 감출 수없다.

                 수많은 구멍이 지극히 비었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 소리를 내고, 수많은 틈이 지극히 비었기 때문에 해와 달이 거기에 빛을 들이게 한다. 어때?

 할머          아이구 원, 무슨 말인지 얼른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는구랴.

 할아          너희들도 그러냐?

 부.고모,상수   글쎄요 ...

 부             아까 말씀하셨듯 뭔가 여유를 가지라는 그런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도 같은 데요.

 할아          나도 그 뜻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장담을 못하겠는데 아무튼 이 글을 읽고 있노라니 그거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들더구먼.

 고모          하늘과 땅 사이 그 광대한 공간이 있기에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구 강과 바다에도 그만한 여유가 있으니까 수많은 시냇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 사실이 그렇잖아요?

 할아          산과 수풀이 나쁜 것들을 감춰 준다는 말이 어쩐지 부정과 악행 따위를 감춘다는 뜻으로 들려 꺼림칙하긴 하지만 남의 약점을 들춰 내지 않고 장점을 드러내 준다든가 남이 부끄러운 점을 감싸 주고 잘못을 용서해 준다는 것으로 풀이한다면 이야말로 무한히 너그러운 마음이 아니겠어?

 모두          네.

 모             바람이 불어 소리내고 수많은 틈이 있어 해와 달이 빛을 비친다는 말씀이 아주 묘한 뜻을 지닌 것 같네요.

 할아          응. 세상사 모든 게 그저 빡빡하게 짜여져 빈틈이 없어야 좋은 듯싶어도 그런다면 밀폐된 방처럼 바람도 안 통하고 캄캄한 동굴처럼 빛조차 들어올 수 없는 거 아니겠어?

 고모          사람 마음이 그렇게 막히고 옹색하다면 환영할 사람 없죠.

 할아          공간이 있어야 하고 틈이 있어야 한다니까. 허점이나 내보이고 엉성하게 맺히지 않는 짓이나 하라는 뜻이 아니라 만물을 포용하는 하늘과 땅, 수많은 시냇물을 받아들이는 강과 바다 그리고 남의 추한 것조차 감추어 주고 아름답게 버티고 서있는 산의 도량을 배울 필요가 있지 않겠어?

 모두          네.

 (M)            -

 어머. 여     네. 그런 말씀을요.

 모             그 말씀을 듣고 있노라니 우리 가정주부들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데요.

 여             우리 기정주부도요?

 모             네.

 어머          아이 전 우리완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 줄 알았는데.

 모             언뜻 그렇게 생각될지 모르지마요, 포용력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나, 모든 일을 따뜻하게 감싸 줘야 한다는 점에서나, 남을 이해하고 단점보다 장점을 찾아내는 미덕을 기른다는 면에서 우리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더라구요.

 어머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좀 이해가 갈 것 같네요.

 여             예를 들어 아줌마처럼 시부모님 모시고 시누이까지 계신 가정에서 살아가시는 마당에 여유없이  마음을 꼭꼭 닫아 놓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단란한 가정을 이룩할 수 있겠어요?

 어머          건 그렇죠. 가족들이 다소 소홀한 점이 있거나 속을 썩히는 일이 있더라도 아니다, 내가 참아야지, 그래 하늘과 땅 사이가 저렇게 넓은데 그쯤 받아들이지 못할까. 강과 바다가 저리도 넓은데 시냇물쯤 못 받아들일 소냐. 사소한 요구쯤 받아들이자, 이거 아녜요?

 여             네.

 모             왜 저를 예로 드세요? 예로 드시겠음 어머님을 예로 드실 일이죠.

 어머,여      할머니를요?

 모             지금이 사 모든 일을 제게 맡겨 놓으신 상태지만 제가 시집와서 얼마 안 됐을 때 어먼님의 눈엔 제가 얼마나 부족해 보이셨겠어요? 그런데도 하해같은 이해심으로 흡사 수풀이 모든 것을 감춰 주듯 귀엽게 봐주셨으니까 오늘같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여             아이 서로 감싸 주시는 저 너그러운 마음씨.

 어머          뉘 아녜요.

 모             왜들 이러세요?

 어머.여      호호호.

 (E)            대문 밀며,

 준이          엄마, 아빠 돌아오셔요.

 어머          오 그래?  마침 잘됐다.

 모             어유.우리가 너무 오래 앉아 있었죠?

 여             뉘 아녜요.

 (M)            -

 아버          저런 그런 말씀을?

 어머          네.

 아버          야, 어르신네께서 어떻게 아시고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어머          뭐라구요?

 아버          꼭 나한테 말씀하신 것 같아서 말야.

 어머          당신한테라뇨? 난 나한테 하신 말씀인줄 알고 당신한테 되도록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대하려고 그랬는데.

 아버          아냐.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 알아?

 어머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래요?

 아버          내 오늘 단단히 결심했다구.

 어머          결심하다뇨? 무슨 결심을요?

 아버          우리 계에 직원이 있는데 아무리 봐도 구제불능이야.

 어머          구제불능요?

 아버          응. 시거든 떫지나 말라고 능력도 없으면서 말이 어찌 그리 많은지 말야.

 어머          저런요.

 아버          그래 내, 부서가 바뀌어서 참고 있었는데, 참는 것도 한계가 있는 거 아냐? 그래 내 내일은 꼭 상신할 작정이었어, 그런 사람 필요 없다구.

 어머          그래서요, 그 결심대로 할 거예요?

 아버          아니.다시 한번 생각해 볼 거야.

 어머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보니 뭔가 느끼는 게 있는 모양이구려?

 아버          응. 구멍이 있어야 바람이 통하고 틈이 있어야 빛이 비치는 거 아냐? 과연 난 내 마음을 닫고 그 친구를 본 거나 아닐까? 그 친구 또한 구멍을 막고 틈을 메워 버리지나 않았나 다시 한번 살펴보고 나서도 늦지 않은 거 아냐?

 어머          아유 여보. 벌써 들리는 것 같구려. 시원하게 바람이 통하는 소리. 그리고 보이는구려. 마음 속 깊이까지 눈부시게  비치는 햇빛이 달빛이.....

 아버          맞어 그래!

 모두          (웃는다)

 (M)           -

 AN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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