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부인   재치부인  

 

 
    
     「1980년의 낙엽」

 

 

 옥희가 낙엽을 열심히 줍고 있었다. 주웠다간 버리고 주웠다간 버리며, 낙엽 중에서 아주 예쁜 것만 고르는 모양이었다. 단풍, 은행, 감나무 등...
 그러다가는 바우네 뒷뜰에까지 와서 줍는 것이었다. 그러는 양을 보고 있던 재치부인,


 「아유, 역시 여자 애는 다르죠? 」

 「뉘 아냐! 저걸 책갈피에다 끼워 놓겠다 그 얘기겠지? 」

 「네 저도 전엔 낙엽만 보면 괜히 마음이 이상해져 가지구 책갈피에 꽂아 놓곤 했렀죠. 」

 「이른바 소녀의 감상(感傷)인가?」

 「그렇죠.」

 「좋은 때다.」

 「감상을 먹고 자라는 나이라구요. 」
 

 그런데 낙엽을 주운 것은 단순한 감상만이 아니었다는 게 곧 나타났다.

 아차부인이 무심코 옥희 방에 들렀다가 벽에 희한한 것이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머나 어머나! 저게 뭐람? 얘가 날 보고 헌 액자 없느냐고 물어 보더니만, 아유 어쩜...」

 

 아차부인은 아차씨를 다급하게 불렀다.

 

 「여보, 여보. 잠깐 이리 와 보세요. 여보!」

 「아니 왜 그래. 옥희네 방에 뭐가 있어서 그러느냐구? 」

 

 아차부인은 옥희 방으로 들어서는 남편에게 벽에 걸린 액자를 가리킨다.

 

  「아니, 저, 저게 무슨 액자람? 」

 

 액자 속엔 아름다운 낙엽 몇 장이 곱게 붙어 있었다. 단풍, 은행, 감나무

 잎 등, 바로 옥희가 열심히 골라서 주운 그 낙엽들이 틀림없었다.

 

 「하하, 애도 별 취미네, 낙엽을 액자에 넣어서 벽에 걸다니?」

 

 그런데 액자엔 낙엽만 붙어 있는 게 아니었다.

 

 「여보,이것 좀 보세요. 여기에 또렷이 글씨가 씌어 있잖아요? 」

 「응, 그렇군. 문구가 씌어 있군. 가만 있자, 뭐라고 썼지? 아니 뭐어? 」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1980년의 낙엽.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오직 1980년의 낙엽.

 

 아차씨는 <오직 1980년의 낙엽>이란 대목에서 야릇한 충격(?) 같은 것을 느꼈다.

 

 「놀랐는데!」

 「네, 어쩐지 숙연해져요!」

 「옥희가 그새 이런 말을 다 쓸 수 있게 됐다니, 잠깐이잖아? 」

 「네.」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오직 1980년의 낙엽이라! 그래. 과연 그래! 같은 나뭇잎이지만 해마다 돋는 잎은 각기 다른 거야. 같은 꽃이지만 해마다 피는 꽃은 이미 전에 피었던 꽃이 아니듯이....」

 

 혼자 뇌이던 아차씨는 문득 시선을 책상 앞에 걸려 있는 달력에다

 고정시켰다.

 달력은 이미 다 떨어져 나가고 11월과 12월만이 한 장에 수록되어 있었다.

 꼭 마지막 낙엽처럼 ...

 

 「낙엽과 마찬가지로 저 달력도 11월과 12월은 오지만 1980년의 11월과 12월은 과거의 11월과 12월도 아니고 미래의 그것도 아닌 오직 1980년의 11월이고 12월이야. 안 그래? 」

 「.........」

 「마지막 저 낙엽처럼 저기 매달려 있는 저 달력! 그러기에 한장 남은 달력이라고 소홀히 넘길 수가 있을까? 그럴  수는 없지. 그것은 역사를 포기하는 것이라구요. 」

 

 심각하게 한마디 하고 아차씨는 뭔가 결심했다는 듯 부지런히 나들이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아니 여보,어디 가려구요?」

 「응, 잠깐 나갔다 올게!」
 

 시간이 얼마 안돼 아차씨는 다시 돌아왔다.

 

 「아니 여보, 어디를 갔다 오는 길이에요? 」

 「응, 이거 사가지고 오는 길이지. 」

 「아니 그건 책 아녜요?」

 「책이 아니라 일기장. 」

 「일기장요?」

 「해마다 정초면 일기를 쓰겠다고 벼르지. 벼르고 벼르기만 했지, 한번도 실천에 옮긴 적이 없어요. 올해도 그랬지. 작년 연말, 내년부턴 꼭 써야지, 결심은 단단했지만 어느새 열 달을 넘기고도 일기장 한 권을 장만하지 못했었다구요. 」

 「아니 그래서요? 내년부터 꼭 쓸 결심으로 미리부터 일기장을 사 둔다는 거예요? 」

 「천만에!」

 「네에?」

 「왜 내년까지 기다리나? 당장 오늘 밤부터 쓰지! 」

 「뭐라구요?」

 「흔히 연말쯤 되면,에라, 연말도 됐으니까 푹 쉬고 새해부터 새 출발하자! 이따위로 넘겨 버리기 일쑨데 올해만은 그럴 수가 없어. 적어도 내 1980년 11월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다시 못 올 오직 1980년의 11월이니까! 」

 「아유 여보, 옥희가 주운 낙엽이 이런 효과를 발휘할 줄은 미처 몰랐구려! 」
 

 꼭 일기에만  한하는 일이 아니겠다. 내년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실천에 옮길 일이다.

 밀렸던 공부를, 안 적었던 가계부를, 벼르던 취미생활을, 미뤘던 독서를,

 망설이던 계획을!

 특히 남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이른바 지도층 인사들은

 참회(懺悔)를.....

 지금 시작하면 내년 정초에 시작하는 것보다 1년은 앞선다.

 

                                       <박서림 방송꽁트집 아차부인. 재치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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