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부인  재치부인>  

 

    

 

       「이제 진짜 가을」

 

    

 

                                                      박서림 정유일 연출

 

 

 (M)            주제가

 

 해설           -

 

 (M)            OUT

 

 아부          (미안한 듯) 여보.

 아             응? 왜 그러누?

 아부          미안해서 어쩌죠?

 아             아니 미안하다니 밑도 끝도 없이 건 또 무슨 소리야? 무슨 일이라도 저질렀다는 건가?

 아부          아이 일을 저지른 게 아니구요, 내가 아무래도 우아한 아내 노릇을 못하는 것 같애서 하는 소리 아녜요.

 아             뭐이? 우아한 아내 노릇을 못하는 것 같다구?

 아부          네. 옆집 바우 엄마에 비해서 말예요.

 아             옆집 바우 엄마에 비해서?

 아부          네.

 아             허허, 오늘따라 왜 이렇게 겸양해지셨지?

 아부          겸양해서가 아니라 방금 담 너머로 옆집 동정을 살폈더니요.

 바우          어? 엄마 엄마! 이것 좀 보세요.

 재부          아니 뭘 가지고 그러니? (온다)

 바우          히히 이것 좀 보세요. 국화가 막 피어나고 있어요. 활짝 필 것 같아요.

 재부          아니 그걸 이제 알았어?

 바우          네 엄마! 야 이쁘다!

 재             (오며) 아니 국화꽃이 핀다구?

 바우          네 이것 보세요 아빠!

 재             응,어디 보자. 야! 정말 국화 꽃이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구나!

 재부          아이 참 당신두, 새삼스럽게 뭘 그러세요? 국화꽃이야  야외 나가 흔히 볼 수 있게 됐는데?

 재             그 지만 여보. 집에서 키우는 품종 좋은 대국(大菊)이야. 지금이 한창 몽우리가 부푸는 철이 아닌가?

 재부          그야 그렇지만요.

 재             야. 멋있다. 이게 진짜 활짝 피어나면 우리 뜰이 아주 훤해지겠는데?

 재부          네. 한 열분 되니까요, 뜰이 훤해지겠죠 뭐.

 재             당신이 봄부터 정성스리 기른 보람이 있군.

 재부          아이, 저 혼자 길렀어요? 당신도 얼마나 열심히 길렀수?

 바우          자주 주셨어요.

 재             아니 그렇지만 엄마의 공에 비길 수야 있겠니?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물 주고 거름 주고 약주고 또 순 집어 주고 줄기 잡아 주고 그야말로 자식 기르듯 하셨다구.

 바우          헤헤. 그건 그래요.

 재부          아이 그렇게 말하니 어째 듣기 거북하구려.

 재             사실이 그렇잖아. 그야 말로 그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어쩌구 저쩌구 하던 그 시구를 연상케 하니 말야 하하.

 재부          호호, 아무튼 국화 꽃을 보니까 이제 진짜 가을이에요.

 재             응, 가을이구 말구. 그러고 보니 난 복을 타고났지 뭐야.

 재부          아니 복을 타고났다는 건 또 뭐예요?

 재             당신이 국화를 기른 덕분에 그야 말로 우아한 가을이 온 것을 느끼게 됐으니 말야.

 재부          아이 참 당신두, 우아한 가을이란 말은 처음 들어 봐요.

 재             우아하잖아! 하하하.(FO)

 재부          당신두 호호호.(FO)

 바우          헤헤헤.(FO)

 아             오 그랬어?

 아부          그러니 여보. 옆집 바우 엄마에 비함 전 아내로서 얼마나 부족하냐구요.

 아             여보 그렇다고 아무리...

 아부          미안해요.

 아             허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아부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고요 제가...

 해설          아차씨 부인의 이런 겸양지덕에 은근히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아             (혼자) 가만 이 사람이 이렇게 나오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자고로 돌로 치면 돌로 치고 떡으로 치면 떡으로 친다는 말이 있는데 말야! 가만 있거라.

 해설          어떻게 든 부인 칭찬할 일이 없나 하고 열심히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             아, 가만!

 아부          아니 여보. 왜 그러세요?

 아             응. 아냐 아무 것두, 얘 옥희야.

 옥희          (OFF) 네? 왜 그러세요 아빠?

 아             너 그 달력 좀 봐주겠니?

 옥희          (와서) 달력요?

 아             응. 달력 좀.

 옥희          어? 그러고 보니 아빠. 오늘이 추분이에요.

 아             그렇지? 오늘이 추분 틀림없지?

 옥희          네 맞아요. 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다는 추분인데요?

 아             됐다!

 아부          되다뇨? 여보. 뭐가 됐다는 얘기예요?

 아             오늘이야 말로 난 당신의 덕을 치하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날이지 뭐겠소.

 아부          뭐예요? 저의 덕을 치하하지 않을 수 없다구요?

 아             그래요. 평소 내가 오늘 오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구요.

 아부          그러니까 추분이 오기를요?

 아             그렇지.

 아부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은 날을요?

 아             그렇지.

 아부          (웃음지으며) 아이 참 별일이구려. 왜 하필이면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은 날을 기다려요?  

 아             당신의 덕을 치하하기 위서라고 그러지 않았어!

 아부          하필이면 왜 오늘이에요. 그리구 저헌테 무슨 덕이 있다는 얘기유?

 아             저렇게 철저히 겸양하다니까!

 아부          뭐라구요?

 아             당신 스스로는 자기가 어떤 덕을 지니고 있는지 모르고 있지만 나는 얼마나 고맙게 여기고 있는데!

 아부          아이참 여보!

 아             자세히 들어요.

 아부          말씀해 보세요.

 아             당신 잊지는 않았겠지. 전번 춘분 때 한 얘기.

 아부          뭐예요? 지난 춘분 때 한 얘기요?

 아             춘분이나 추분이나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은데 낮과 밤의 길이가 똑 같은 것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무엇을 뜻하느냐?

 아부          오, 기억 나요! 그것은 곧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으며, 기울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중용을 뜻하는 게 아니냐구 그러셨죠.

 아             기억력도 좋다!

 아부옥희   호호호.

 아             근데 난 그 중용의 덕을 바로 당신한테서 발견했다 그런 얘기야.

 아부          (웃으며) 뭐라구요?

 아             당신이야 말로 나의 아내로서, 옥희 엄마로서, 나아가 이 동네 이웃으로서 중용지도를 지키고 있는 주부가 아니냐 그런 얘기야.

 아부          여보! 제가 어찌 감히?

 아             잘났다고 남편한테 거만떨기를 하나, 그렇다고 애교가 지나치게 알랑거리기를 하나, 자 그러니  이게 곧 중용지도요,

 아부          아이.이이가?

 아             옥희한테 무관심한 엄마이기를 한가, 그렇다고 애정이 지나 쳐서 동물적인 과보호를 하나?

                 따라서 이것이 곧 중용지도요,

 아부          아유 참 여보!

 아             또한 이웃간에 해를 끼치기를 하나? 그렇다고 난 척을 하나? 따라서 이것이 곧 중용지도가 아니겠느냐 그런 말이야.

 아부          여보, 그건 칭찬이 지나치셨어요.

 아             칭찬이 지나치기는 뭐가?

 아부          저같이 미련한 여편네가 세상에 어디 있는데 감히 중용지도예요!

 아             자기 스스로를 미련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결코 미련한 게 아냐. 내가 잘났다고 뻐기는 사람이 바로 어리석은 사람이지. 안 그러냐 옥희야?

 옥희          네, 그건 그래요.

 아부          여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입의 침이 마르도록 제 칭찬이세요 그래?

 아             내가 말하지 않았나 베.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이 가을철을 맞이하여 가을 열매처럼 꽉 찬 당신의 존재를 새삼 깨달았다구.

 아부          여보! 칭찬이 지나치면 그건 중용지도가 못되잖우.

 아             아이구 그런가?

 아부          호호, 당신 심정 이제 알만큼 알았으니까요, 이제 칭찬은 관두세요.

 아             하하, 아이구 그러고 보니 진짜 나야 말로 당신한테 미안한데? 당신한테 중용지덕을 보이지 못한 미욱한 남편 밖에 못돼서 말야.

 아부          호호, 참 당신두, 어쩜 그런 겸양을 또.

 아             당신이 겸양 떠니까 나도 그러는 거지 뭐!

 옥희          호호 호호호. 엄마 아빠의 모습이 꼭 익어서 고개 숙이는 벼이삭만 같아요.

 아             그렇지 옥희야?

 옥희          네.

 아             여보. 그 말 들으니 진짜 기분 좋은데?

 아부          뉘 아녜요!

 모두          (웃는 속에)

 

 (M)            -

 

 해설           -

 

                           KBS<아차부인.재치부인> 테입에서 채록 (8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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