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부인   재치부인  

 

 
                  
  「유감 풀기」

 

 

 연말이 가까운 어느날, 콧대씨, 일찍 퇴근을 하고서는 막 바로 집으로 들어왔다.


 「어머, 어머! 여보 어쩐 일이세요? 」

 「어쩐 일이라니, 남편이 회사에 나갔다 퇴근하는데 어쩐 일이냐는 건 또 뭔구? 」

 「아이, 이렇게 일찍 들어오시니까 그렇죠, 호호호. 」

 「그럼 이제라도 다시 나갔다 뚜우 하거든 돌아올까? 」

 「아유, 여보 참으시구랴!」

 「하하, 왜 그 소리엔 겁이 나나?」

 「그럼요, 겁이 나지 않구요!」

 「하하 실은 말야. 오늘 아니면 때를 놓칠 것 같아서 일찍 들어온 거예요. 」

 「아니 때를 놓치다 뇨?」

 「연하장! 연하장을 보내야 될 거 아니오.」

 「아, 연하장요? 그치만  연하장을 보내지 말자는 운동들을 벌이고 있잖아요? 」

 「같은 연하장이라도 형식적이고 허례허식에 찬 연하장을 보내지 말자는 뜻이겠지. 」

 「하긴 그래요. 꼭 인사를 해야 할 자리가 있는데 시침 뚝 떼면 그건 결례가 아니겠어요? 」

 「여부 있나?」

 「그래서요? 지난 한해 동안 폐 많이 끼진 분, 평소 존경하던 분, 바빠서 일 년 내내 소식 제대로 전하지 못한 분들에게 연하장이라도 보내겠다는 말씀이죠? 」

 「응, 그런 분들에게도 물론 보내야 하고, 또 한 사람 꼭  보내야 할 사람이 있어요. 」

 「아니 누군데요?」

 「성미도 급하구먼. 어서 준비나 해 줘요. 옆에서 봉투 쓸 때 거들어도 주구...」
 

콧대사장은 기억을 더듬어 가며 소중하게 연하장의 봉투 하나하나를

적어 나간다. 콧대 부인도 옆에서 거드느라 정신이 없다.

 

 「아유, 당신, 참 꾸준도 하시구랴. 」

 「꾸준하다니?」

 「이 분은 국민학교 때 은사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

 「응, 은사시지.」

 「어쩜 매해 꼬박꼬박 이렇게 연하장을 보낸단 말유? 」

 「직접 찾아뵙지 못하고 연하장으로 대신하는데 뭘 그리 대단하다구...」

 「그치만 그게 어디 쉬운 일유?」

 「허허 군사부 일체란 말 못 들었소? 선생님의 은혜는 결코 잊어서는 안돼요.」

 

 콧대사장이 계속 봉투를 써 내려 가는데 콧대부인의 눈이 어느 봉투에

이르자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어머나 여보, 방금 쓰신 이 김동학씨면 , 당신? 」

 「응, 당신도 알겠구려, 이 친구. 」

 「모를 리가 있어요?  당신하고 지난 여름 대판으로 싸운 분 아녜요? 」

 「그래 맞아요. 나하고 대판으로 싸웠지.」

 「아니 그렇게. 의리없는 인간이라 거니 배반자라 거니 하면서 척진 사람한테 연하장을 보내겠다는 거예요? 」

 「허허, 보내야지. 이미 오해가 풀린 사인데....」

 「아유, 그치만 당신 쓸개도 없으슈! 이 사람이 당신한테 할 소리 못할 소리 마구 퍼부었다는 걸 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

 「허나 이 친군 오랫동안을 나와 동고동락해 친구였어요.」

 「뭐라구요? 」

 「 이해가 다 가고 이제 새해가 와요. 새해는 새로운 기분, 새로운 결의, 새로운 희망으로 맞이하는 게 당연하지, 사소한 감정 따위를 앙금처럼 남겨 놓아서야 쓰나? 악감정은 깨끗이 씻어 버리는 거야.
낡은 원한같은 것은 낡은 해와 함께 곱게 버리고 새 출발을 하는 거요. 얼마나 떳떳하고 얼마나 남자다워!  안그래?」

 

  콧대부인은 자기도 모르게 콧대사장의 도량에 감탄한다.

 

 「아유,역시 당신은 당신이구려.」

 「암, 난 과연 나지! 하하하.」
   

 콧대사장의 연하장에 얽힌 이야기는 골목 안의 화제거리가 되었다.

 

 바우 할아버지,

 

 「으흠, 과연 한 회사를 이끌어 나가는 분이라 다른 데다 있구먼! 」

 

 고사리씨,

 

 「그야 말로 도량이 십만 평방 킬로미터는 되는 거 같죠? 」

 「아이참 무슨 표현이 그래요?」

 

 고사리부인이 눈을 흘긴다.

 

 다시 바우 할아버지,

 

 「콧대사장을 거울삼아서 우리도 사소한 감정 따위는 해가 가기 전에 깨끗하게 씻어 버리는 게 좋겠구먼.」

 「네, 정말 그렇습니다. 여보 알았지?  그 동안 나한테 가지고 있던  감정이 있거든 쓰레기 통에다 깨끗이 버려!」

 

 아차씨가 나서자,

 

 「이그, 겨우 한다는 소리가 쓰레기통이에요?」

 

 아차부인이 윽박지른다 .

 

 「당신은 없나? 당신은 없어?」

 

 재치씨가 끼어들자 재치부인이 무슨 소리냐는 듯,

 

 「호호 없사와요. 감정은 그 시 그 시 풀어 버렸으니까요. 참 바유와 옥희도 뭐 생각나는 게 없니? 」

 「글세요.」

 

 바우가  눈알을 굴린다.

 

 「그 얘기를 듣고 저도 친구하고 화해하기로 했어요. 」

 

 옥희도 부끄러운 듯 말을 꺼냈다.

 

 「왜, 원수진 친구라도 있었니? 」

 

 아차씨가 묻자,

 

 「이그, 끔찍하게 원수 진다는 게 다 뭐유? 」

 

 아차씨가 핀잔하자 옥희가 사정을 얘기한다.

 

 「원수는 아니더라두요, 앙숙처럼 지냈거든요. 좀 있다 전화라도 걸어서 감정을 풀겠어요. 」

 「허허, 두루두루 좋은 영향들을 받는구나.」
 

 이때 아차씨,재치씨의 어깨를 툭 쳤다.

 

 「여보게 재치!」

 「아니 왜 그래?」

 「모두들 이렇게 낡은 감정을 풀어 버린다는데 자네와 나만 유독 구태의연할 수 있어? 」

 「아니 난 데없이 그건 무슨 소리? 」

 「우리도 한 해가 오기 전에 깨끗하게 잊어버린다 ! 얼마나 좋아? 」

 「좋아, 구원(舊怨)을 깨끗하게 잊어버린다는 거, 좋지! 근데 도대체 자네와 나 사이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었다는 얘기야? 」

 「원한은 아니라도 잊어야 될 것이 있지.」

 「뭐 잊어야 될 거? 」

 「응,딱 한 가지 있다구.」

 「그게 뭔데?」

 「요 전에 내기 장기 뒀을 때 왜 있잖아. 」

 「오 그거, 대포 사기로 한 거? 자네 실행하지 않았지? 」

 「잊게, 잊는 거야. 깨끗하게 잊는 거라구. 히히히! 」

 「고마우이. 나 사실은 그것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자네가 일깨워 줬네 그려! 이젠 그걸 사게! 」

 「아니 뭐?」

 「이 친구야! 꺼림칙하게 그따위 대포 한잔의 빚을 지고 새해를 맞이해? 구질구질하게! 」

 「아유, 그건 바우 아빠 말씀이 옳아요. 」

 「뭐 뭐?」
 「여보, 남자가 뭘 그러우? 깨끗하게 청산하고 넘어가세요.」
 「야 이거야, 혹 떼려다 혹 붙인 거 아냐?」
 「하하하.」
 「호호호.」

 

                                    <박서림 방송꽁트집. 아차부인.재치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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