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부인   재치부인  

   

       「왼 손으로 글씨쓰기」


                                                                                
朴 西 林

 
 오늘 따라 아차씨, TV에 열중해 있다. 재미있는 오락 프로도 아니고 그가 좋아하는 스포츠 중계도 아닌, 서예(書藝)강좌인데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를 않는다 .
 설마 시범을 보이고 있는 여자 수강자(受講者)의 용모가 꽤 매력적이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붓글씨라는 게  오른손으로만 쓰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군!」
              
 서예강좌 프로가 끝나자 그는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럼, 오른손으로 쓰지 딴 손으로 쓴다는 얘기예요?」
 

옆에 있던 아차부인이 의아해서 물었다.

 

   「왼손의 보조가 없이는 바른손은 제구실을 못 하더라구.」
 

그는 점잖게 한 마디 하고 볼펜과 종이를 준비했다.

 

   「자,실지로 보여줄 테니 두고 보라구,」
 

그는 왼손을 등 뒤로 돌렸다. 그리고 오른손만으로 종이에다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세가 이상해지고 종이는 밀리고 아주 어색한 글씨가 되고 말았다.


   「봐. 글씨가 엉망이잖아?」

   「...」

   「그럼, 이제 왼손을 여기 이렇게 튼튼하게 바치고, 똑바른 자세로 써 볼테니 두고 보라구.」

 

 왼손으로 종이를 받치자 오른손은 아주 힘차고 매끈하게 백지 위를 달리는 것이다.
 아내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과연 글씨는 오른손으로만 쓰는 게 아니구려.」

  「비단 글 쓰는 것 뿐일까?」

  「아니 그럼?」

  「방금 느낀 건데, 글씨뿐만이 아니라 가정도 마찬가지일 것 같애!」

  「?」

  「가정을 영위해 나가는 있어서도 가장이 있으면 내조하는 아내가 있어야 하구, 올바른 정신적 자세와 가통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런 얘기지.」
 

아내는 새삼 남편을 올려다 본다.

 

 <이이가 이런 얘기를 할 때가 있네?>


 

  「그런 의미에서 여보, 난 훌륭한 왼손 역할을 해주는 당시의 존재를   새삼 고맙게 여기지 않을 수 없군.」

 

 그의 손이 아내의 손을 더듬는다.

 

 「여보, 감사해. 진심이라구!」
 
 떡으로 치면 떡으로 치고, 돌로 치면 돌로 친다는 속담이 있다.  
 아차씨가, 아내의 역할을 별 거 아닌 것이라고 주장했다면, 아내로서도 당신은 얼마나 유능해서 그런 소리유, 언제 한 번 호강시켜 본 적 있으세요 하고 대뜸 대들었을테지만, 돌이 아닌 떡으로 치는 데야 이쪽에서도 돌로 칠 수야 있나!


 「누가 할 소리를 누가하는지 모르겠구려!」

 

하고는 남편의 손에서 볼펜을 뺏어들었다. 그리고서는,

 

 「그럼 제가 보여드릴 게 있으니 잘 보세요」

 

 하고는 볼펜을 왼손으로 들고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아니,여보. 왜 볼펜을 완손으로 들고 글씨를 쓰고 있는 게야!」

 「잠자코 보고만 계세요.」
 

왼손으로 어색하게 써진 글씨는 무슨 글자인지 알아보지 못할 만큼 꼬불탕 꼬불탕하고 삐뚤빼뚤하고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아니 이게 뭐야.이걸 글씨라고 쓰고 있는 거야? 」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아차부인은 계속 몇 자 더 공들여 써내려 가는 것이었다.

 

 「어때요, 좀 나아졌죠?」

 「응, 이제 좀 글씨 같긴 하구먼. 그치만 여보. 아무리 오른손으로 쓴 글씨 같기야 하겠소?」

 

아내는 남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여기서 뭐 느끼는 거 없으세요?」

 「?」

 「전, 가정도 이 왼손글씨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만일 한 가정에 남편이 없거나,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아주 무능하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땐 할 수없이 안식구가 살림을 꾸려가야 할 거 아니겠어요?」

 「!」

 「안식구가 살림을 책임질 때 어디 유능한 남자가 살림을 맡을 때와 같겠어요? 흡사 왼손 글씨 쓰듯, 힘들고 서툴 것이 아니냐구요!」

 「.......」

 「그런 의미에서 여보, 새삼스럽게 당신의 존재가 고마웠어요. 여보 고마워요!」

 

 아차씨는 그러는 아내가 무한히 사랑스러웠다.

 

 「히히히, 사아람, 조금도 지려고 들지 않지!」

 「안 지려고 이런 말 내놓는 게 아니라요, 당신 얘기를 듣다 보니 선배 언니 생각이 나지 뭐에요.」

 「뭐? 선배 언니?」
 

얼마 전 선배 언니가 아차부인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보험회사 외무사원(지금은 설계사)이었다.
 남편이 뜻하지 않은 사고로 돌아가시고, 딸린 식구 많으니 어쩔 수없이 생활전선에 뛰어들긴 했으나, 원체 수줍음을 잘 타는 성미라 처음엔 말도 꺼내지 못하고 그대로로 돌아서기 일쑤였고, 무거운  다리 이끌고 돌아갈 적엔 숟하게 울기도 했다지 않던가!


 「그런 선배 언니에 비함 저야 무슨 걱정이 있어요? 당신 같이 건강한 남편 있구, 옥희있구, 그리구 당신은 튼튼한 직장이 있구요. 안그래요?」
 

아내가 하찮게 여겨질 적엔 오른손만으로 글씨를 써 볼 일이다.꼭 글씨가 아니더라도 오른손만으로 잘 되는 일이 어디 있을까?
 마찬가지로, 남편이 별 것 아니라고 느껴지거든, 하다 못해 부엌칼이라도 한 번 왼손에 들어 보시라. 오른손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껴질 것이다. 단 선천적인 왼손잡이는 예외지만..  

 

  ( 1981년 간 < 방송꽁트집> ‘아차부인.재치부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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