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부인   재치부인  

   

        [아차기질. 재치기질]


                                                                                
朴 西 林

 이 글은 TBC '아차부인.재치부인' 프로가 4,000회를 맞이한 1975년 10월 19일을 기념하기 위한 "中央"誌 특집에 내가 기고(寄稿)한 것입니다. 그때까지 나는 절반인 2,000회를 썼었습니다.

 

 퇴근길의 대포 한잔은 맛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대포 맛이 좋은 이유가 아차와 재치에게는 정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
 재치는 참신한 아이디어, 빈 틈없는 일솜씨로 하루의 일을 보기 좋게 마무리지어서 흡족하다.
 그러나 아차는 별로 어렵지도 않은 계산인데 중간에 숫자를 빠트려서 핀잔을 듣고 애깨나 먹은 것이다.   
 "체, 나사가 헐거워서 그런대나? 바짝 죄라는 거야. 내가 기계 부속품 밖에는 못된다는 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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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령, 낚시를 가도 재치는 솜씨가 좋아서 꽤 잡는다. 본격적인 조사(釣士)가 못되어서 월척은 한 마리 정도로 그쳤지만, 언제나 질로나 양으로나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아차는 다르다. 하루 온종일을 가도 원자탄 떡밥과 지렁이만 제공하기 일쑤고 ,겨우 잡는다는 것이 엄지손가락 만한 붕어 한 마리 그것도 입에 걸린 것이 아니라 홧김에 낚아챈 낚시에 뱃대기가 걸려 나오게 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빈 바구니로  집에 돌아올 적에 스마일.뱃치 크게 만들어 바구니에 넣고 변명 아닌 궤변을 늘어놓는 것은 '스마일운동'이 한창일 때였다.
 "낚시도 살생(殺生)이라고, 살생은 왜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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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인들도 그렇다.
 재치부인은 살림솜씨가 알뜰하다. 글 솜씨까지 만만치 않다.
 이따금 신문 여성란에 투고를 하는데 곧잘 채택이 되어 그 고료를 살림에 보태 쓴다.
 아차부인, 이것이 샘이 나서 자기도 원고지와 펜을 들고 나섰다.
 제목까지 "남편을 위하자" 해 놓고 쓰기는 쓰지만 안 써 보던 일이 그리 쉽게 될 도리가 있나. 남편이 돌아와 시장하다는 데도 잔뜩 책상에 붙어서 종이만 꾸기고 또 꾸기고...
 "아서,아서. 남편을 위하자 해 놓고 잔뜩 구박하고 있잖아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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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차부인은 어려운 일만 있으면 사사건건 재치부인의 아이디어를 얻으러 온다.
 재치부인 한테선 언제나 좋은 꾀가 샘물처럼 솟는다  
 재치부인이 없으면 하루도 못 견딜 것만 같은 아차부인이다. 그리구선 의미 있는 한마디.
 "아니죠. 자기 지식과 지혜를 아낌없이 제공하는 것도 미덕이지만요, 부끄러워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상의하는 것도 또한 보통 사람이 지닐 수 없는 미덕이라구요."
 이 지경이니, 아차씨와 재치씨가 무슨 내기를 걸었다 하면 그 결과는 불문 가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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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를테면 재치는 엘리트고 아차는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
 그러나 빠트릴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재치는 결코 드라이한 현자(賢者)가 아니며, 아차 또한 덮어놓고 주체성도 없는 우자(愚者)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그 대조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시기하지 않고 업신여기지도 않으며, 이해하고 존중하고, 아내와는 다툴망정 자기들끼리는 다투지도 않으면서 오랫동안 이웃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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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차부인.재치부인"이 4,000회를 이어 오는 동안, 이 두 사람에 대해 청취자에게 인기투표를 시키면 어느 편이 과연 더 많은 표를 얻을까? 궁금했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 어려운 세상, 아무쪼록 손해보지 말고 빈틈없이 약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재치 편의 표가 월등히 많을 것 같다가도, 아니지! 이렇게 어려운 세상일수록 실수도 있고, 남을 웃길 수도 있는 여유를 가져야지, 남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도 아니고 남을 비웃는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을 웃는 데야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생각이 이에 미치면 아차 편의 표가 단연 웃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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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될 수만 있다면 양쪽의 표가 똑 같이 반반이었으면 좋겠다.
 슬기도 있고 능력도 있어야 한다. 또한 야박하지 않고 약간의 손해나 실수쯤은 허허 웃어넘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욕심을 부리자면 여기에다 부이무교(富而無驕),곧 잘 살면서도 거만하지 않은 콧대사장의 서민기질
,그리고 고사리군의 천진성이 함께 어울리면 금상첨화겠다.
 이들이 어울려 사는 골목이라면 어찌 외로운 노인, 사랑에 굶주린 청소년들이 있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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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기는 아차와 재치와 콧대 기질이 서로 믿으며 의지하고 사는 풍조가 그 골목이 그치지 않고 전국 방방곡곡에 널리 퍼져서 불신이 없는 명랑한 사회가 일지기를......

 

                                        (1975년 10월 19일 4,000회를 맞으며)             

 

앞으로 보관되어 있는 원고나 카셋 테입 중에서 골라 조금씩 올리기로 하겠습니다.
시대의 차이가 있어 진부한 느낌이 들겠지만 시대상을 짐작할 수는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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