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부인   재치부인  

 

  

        [아내여 미안!]


                                                                                
朴 西 林

 「해방이다, 드디어 해방! 모처럼 마누라의 속박에서 벗어나 보는 거야. 그 지겨운 바가지로 부터의 해방!」
 아차씨는 부인이 모처럼 친정 나들이를 떠나자 이렇게 좋아했다. 하루 밤자고 그 이튿날 오후 쯤 돌아올 예정으로 떠났으니 오늘 밤은 마음껏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한껏 누리리라! 희희낙락이었다. 술을 질탕 마시고 들어온들 시비 걸 사람이 있나, 눈 흘길 아내가 있나, 아침부터 그는 들떠 있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퇴근 길에 가볍게 한 잔...」
 고사리가 권하는데도

 「아냐,그냥 들어가는 게 좋겠어.」

 「아니, 이게 무슨 말씀이세요? 모처럼 해방감을 만끽하겠다고 벼르시던 분이?」

 「그럴까도 생가했는데,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옥희 생각을 하니 그럴 수가 없다니까.」

 「원 그러니까 누가 뚜우할 때까지 마시잡니까? 그저 가볍게 한 잔!」

 「처음에야 누구나 가볍게 한 잔이지. 하지만 그게 어디 그렇데 돼?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넉 잔 되고, 넉 잔이 한 병 되고, 한 병이 두 병 되는 거 아냐?」

 「원참 과장님두...」

 「우리 그러지 말고 일찍 들어가 재치랑 함께 셋이서 바둑이나 두지, 리그전으로 말야.  아, 안 좋아?」

 마음껏 해방감을 맛보자는 것이 겨우 바둑 시합으로 낙착이 되고 말았다.
 그 뿐인가?

 밤이 깊어지자 재치씨 고사리씨 보고,
 「여보게 우리 이제 그만 두고 가지.」
 「예. 가십시다.」

 그러자 아차씨,

 

 「아니,아니 왜들 일어나는 거야?」

 「왜라니? 이제 가서 자야지.」

 「그새?」

 「그새가 뭡니까? 자정이 다 돼가는데요.」

 「이 친구들아. 바로 옆집인데 자정이면 어때서 그래?  자 자, 더 두자구  더....」

 「그만 두겠네. 바둑도 맑은 정신에 둬야지 골치가 멍해서 흥미가 없어.」

 「그러게나 말입니다. 벌써 몇판을 뒀는지 정신이 가물가물해서 통 수가 보이질 않습니다.」
       

털고 일어나는 재치씨와 고사리씨를 어떻게든 붙들 양으로 아차씨는 술을 찾는다.


 「여보게들, 그럼 술이나 더하고 가. 여기 술 남았어!」

 「술도 안주가 있어야지.」

 「안주야 구하면 되지!」

 「이 밤중에 어디서 구합니까?」

 「가만 있어 보라구, 옥희 시켜서 부엌에서...」

 

그러나 옥희는 이미 잠들었고 부엌을 뒤져도 안주거리가 있을 성 싶지  않다.


 「자 그럼 편히 쉬게.」

 「내일 아침 출근하셔야 할 거 아닙니까? 푹 쉬십쇼.」

 

친구들마저 돌아가니 아차씨는 그렇게 적적할 수가 없었다.
남은 술을 따라 혼자 홀짝 마시고는,

 

 「크으, 야 이거야 심심해서 술 마실 수 있나? 하다 못해 마누라라도 있 어야 횡설수설 잔주정도 받아주고 그럭저럭 술맛이 나기 마련인데..」


또 한 모금,

 

 「크! 으이 써! 무슨 술이 이래? 야, 하다 못해 마누라가 눈이라도 흘겨야 그걸 안주 삼아 마시는 건데...」


텔레비전도 이미 방영이 끝났다. 주위는 적막할 뿐,

 

 「아, 참 라디오가 있지? 」

 

그러나 라디오 스위치를 돌리니 청소년 상대의 간지러운 심야방송이다.  팝송이 귀에 거슬린다.

 

 「에이,생리에 안맞아!」


라디오를 꺼 버리고 다시 한 모금.

 

 「크! 참 맛대가리도 없는 술이네! 에이 잠이나 자자!」

 

그러나 어쩐 일로 잠이 오지 않는다. 공연히 허전하고 심심하다. 괜히 마누라가 그리워진다. 마누라도 지금 쯤 내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새 괘종은 한 점을 치고 있었다.


 

 「야, 이거 문젤쎄, 괜히 후덕지근하니 미치겠군! 이러다가 밤샘이라도 하게 되는 거 아냐?」
         

이때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생명의 소리’전화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고민이 있는 사람이 전화를 걸면 상담역이 그 고민을 풀어준다고 했다. 그래서 자살하려는 사람도 많이 구했다지 않는가!


 

 「옳거니,거기에 전화를 걸어보자. 나같이 아내를 친정에 보내  놓고 잠을 못 이루고 있을 적에, 어떻게 해야 편안히 잠들 수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는 거야!」

           
 이윽고 그는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떨리는 손으로 다이알을 돌렸다.  여러  번 통화중 신호가 들려왔지만 끈기 있게 다시 돌렸다. 그러자 마침내...


 「여보세요 생명의 소립니다.」

 「이크 나왔다! 아리따운 여자의 목소리....」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무슨 고민이신지요?」

 「예 저,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이름은 안 대셔도 좋습니다. 무슨 고민이신지 함께 얘기나 나눠보기로 할까요?」

 「네 저.....」

 「말씀하세요. 무슨 얘기라도 좋아요 털어놓고 말씀하세요!」

 「네 사실은 오늘 아침에 마누라가 친정엘 갔거든요.」

 「다투셨군요.그렇다고 친정에 가버리는 건 좋은 일이 아닌데요,」

 「아, 아 아닙니다 천만에요!」

 「아니 그럼....」

 「다툰 게 아니구요, 그냥 하도 오랫동안 친정엘 안 가봐서요, 그래 다녀오려고 간 겁니다.」

 「그러세요. 아니 그럼 무슨 고민이 있어서..」

 「네, 다름이 아니구요, 겨우 하룻밤인데 통 잠이 오질 않는군요. 그래서 그민을  풀 수가 없을까 해서....」
 

잠깐 침묵이 흐르더니 다시 미소라도 짓듯 여인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선생께선 무슨 고민을 풀어 달라거나, 불행을 호소하려는 게 아니라 행복을 자랑하려고 이 전화를 거신 거로군요?」

 「네에?」

 「호호, 안그래요? 그게 어찌 고민이 될 수 있어요? 선생께선 이 전화를 거실 자격이 없으세요. 이 전화는요, 불행한 분들을 위해서 있는 거지,선생처럼 다복하신 분에게는 소용 없는 전화랍니다. 호호 딴 분에게 양보 좀 하시죠.」

 「아 잠깐, 잠깐만요!」

 「왜 그러세요?」

 「알겠습니다. 주제넘게 제가 시간을 뺏은 것은 죄송합니다만, 이왕 어려운 통화가 됐으니, 어떻겠습니까? 이런 밤, 이런 적적한 밤의 고독을 무엇으로 메우면 좋을까요?  네? 부탁합니다. 현명한 대답 좀 해주십시오.」

 

다시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여인은 말을 잇는다.

 

 「달마 스님 아시죠?」

 「네, 달마 스님요, 압니다. 그쯤은 알고 있습니다. 면벽구년(面壁九年), 벽을 향애 9년을 앉아서 득도를 하신 분이 아닙니까? 」

 「그 달마 스님처럼 면벽구년은 어렵구요, 어떻겠어요. 면벽일야(一夜)....」

 「뭐라구요? 면벽일야요?」

 「네, 하룻밤 벽을 향해 앉아서 생각해 보시는 겁니다. 나는 과연 아내를 위해 남편다운 남편 노릇을 했느냐, 나는 과연 남편으로서 모든 면에서 떳떳했는가? 곰곰이 반성해 보는 겁니다.」

 「야, 과연 다르시군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수화기를 놓고 아차씨는 결심했다.         

 

 「면벽일야라, 좋았어! 수양삼아 하룻밤 면벽일야를 해 볼 거야. 내 꼭!」

 

 이튿날 새벽이었다,
 옥희가 아빠를 깨우려고 안 방으로 들어가 보니 아차씨는 곯아 떨어져 있고 방 바닥에 종이가 여러 장 흩어져 있는데 그 종이에는 무수히 낙서한 흔적이 있었다.

 

  - 아내여 미안하오!
  - 여보 미안해!
  - 여보 용서하오!
  - 앞으로 좋은 남편이 되겠어 여보!
  
 이따금 남편을 외톨이로 만들어 볼 필요가 있다.
 공기가 없어야 공기의 고마움을 알 듯, 아내가 없어야 아내의 고마움을 실감하는 법이다.

                              (박서림 방송꽁트집 ‘아차부인.재치부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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