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부인   재치부인  

   

         「배추모종 솎아보니」

 

 

                                                                           朴 西 林

 

 

 아차씨, 오늘따라 매우 우울한 낯색으로 퇴근했다. 예사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걱정이 된 아차부인,


 「여보, 술 한 잔 하시려우?」
 「아냐, 오다가 한 잔 했어요.」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구려?」
 「아니 뭐 별루...」
 「말씀해 보세요.나 한테 숨길 게 뭐 있어요? 」
 
 그러자  비로소 한숨을 내 쉬더니  아차씨, 입을 연다.

 

 「회자정리(會者定離),만나면 헤어지는 게 인간사라지만 어쩐지 내가 죄를 지은 것 같지 뭐요. 」

 「아니, 그러고 보니 무슨 인사문제로....」

 「김군 있잖아, 고사리하고 함께 입사한...」

 「네 있죠. 고사리씨하고 실력도 막상막하고 성격도 좋고 해서 당신이 무척 신임하고 있잖아요? 그 사람이 이동하나요? 딴 데로?」
  

 아차씨는 다시 한숨을 내쉬더니 어렵게 말을 이어 나갔다.

 

 「어쩔 수 없었다구.」

 「무슨 사고라도...」

 「사고는 무슨...」

 「그만 두게 됐나요? 」

 「지방으로 전근 가게 됐어요.」

 「어머나 지방으로요? 」

 「멀지 않은 수원이지만 말야.」

 「아 네, 멀지는 않구려.」

 「어쩔 수없는 인사이동이긴 하지만 꼭 내가 내쫓은 것 같아서 말야.」

 「아이, 그게 어찌 당신 탓이겠수?」

 「내 탓일 수도 있지. 상신(上申)은 어디까지나 내가 했으니까!」

 「그래서요, 미스터 김이 당신을 원망하기라도 한다는 얘기예요? 」

 「겉으로야 나타내나? 허지만 속으로야 얼마나 원망하겠어? 지금 꼭 그 친구가 나 한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구! 」

 

 __ 흥, 그러면 그렇지! 겉으론 가장 신임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내가 은근히 미웠던 거야. 그러길래 지방으로 쫓아내지. 아차과장도 별 수없는 위선자야. 그래, 위선자라구!

 

 이튿날 아침,재치부인은 남편에게 당부했다.

 

 「오늘 딴 약속 없거든 옥희 아빠 좀 위로해 드리세요. 간밤에 옥희엄마 얘기 들으니깐 옥희 아빠께서 인사문제로 고민에 빠져 있는 모양이더라구요.」

 「인사문제? 아니 그럼 그 친구 마침내 딴 과로 떨어져 나가기라도....」

 「아이참. 누가 그 얘기라우? 자기 부하의 인사문제로 고민하고 있다잖아요. 」

 「친구 소심하긴, 인사문제는 어디까지나 원칙대로 하면 그만인데 고민은 무슨 고민! 」

 「당신두, 인사는 어디까지나 글자 그대로 감정이 있는 사람의 일(人事) 아뉴! 」

 「허긴 컴퓨터로 계산해 내듯 기계적으로 처리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그러니 아셨죠? 」

 「알았어, 대포 마실 구실이 생겼군!」
 

 이윽고 저녁때 대포집. 재치씨는 아차씨와 고사리씨를 불러다 앉히고 술을 따른다.

 

 「자 자, 들어! 그까짓 일은 잊는 거냐.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요, 전화위복이란 말 있잖나? 그  까짓 일을 가지고 여러날을 우울해다니 말이나 돼?」

 

 고사리씨가 맞장구를 친다.

 

 「네 그렇습니다. 과장님이 이러심,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 고사리 이 친구를 봐서라도 이러는 게 아니라구!」

 

그러자 아차씨는 겨우 대답한다,

 

 「알겠네. 미안해. 그러고 보니 내가 너무 그런 일에 집착했던 것 같애. 」

 「아 그럼! 할 일도 많는 사람이 지난 일을 가지고 고민해서야 써? 신경 굵게 가지라구! 」

 

 해서 심기 일전,모두 잔을 들고 한잔 들이켜려는 때였다.

 

 「아,여기들 게시군요. 여기 계실 줄 알았습니다.」
 「앗 자네!」
 「앗, 김형!」

 

 어떻게 알았을까? 장본인인 김군이 활짝 웃는 얼굴로 그들 앞에 서 있지 않은가!

 

 「어쩐 일이야, 언제 올라왔나?」

 「하하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아닙니까? 」

 「여긴 어떻게 알고 왔구?」

 「여기가 본시 단골집 아닙니까? 암만해도 여기 게실 것 같아서 와 본 겁니다! 」

 「잘 왔네. 그러잖아도 자네 얘기를 하고 있던 길이야.」

 「김형! 이 좌석이 어떤 좌석인지 알아? 과장님께서 김형 일로 며칠째 우울해 하셔서 그래 마련한 자리라구! 」


 그러자 김군 얼씨구나 한다.

 

 「그렇담 마침 잘 됐군요. 저 사실은 과장님 안심시켜 드리려고 이렇게 오는 길입니다. 」

 「안심 시키려고?」

 「솔직한 얘기로 저 처음엔 지방을 전근된 걸 좀 섭섭해 했습니다. 」

 「!」

 「하지만 지금 심정은 다릅니다.그와 정반대죠! 」

 「?」

 「제가 기숙하고 있는 집 채소밭에서 바로 어제 갓 싹이 돋아난 배추 모종을 주인 할머니하고 함께 속지 않았겠습니까?」

 「배추 모종을!」

 「네. 발육을 촉진하기 위해서 촘촘하게 돋아난 싹을 솎아 내질 않습니까?」

 「알고 있어! 」

 「제가 직접 제 손으로 그 배추 모종을 솎아 내보니 느끼는 바가 있더군요. 」

 「느끼는 바가?」

 「뽑히는 싹과 남는 싹의 운명은 전적으로 제 손에 달려 있는데요, 아무리 발육 좋은 싹도 입지조건 (立地條件)이 좋지 않으면 뽑아 내지 않을 수가 없구요, 똑같이 잘 된 싹도 함께 촘촘히 붙어 있으면 둘 중의 하나는 그야말로 눈물을 머금고 뽑아 낼 수 밖에 없더군요. 그래야 하나라도 제대로 자라지, 아깝다고 둘 다 놔두면 둘 다 보잘 것없는 배추가 되어버릴 수 밖에 없겠더라구요. 」

 「.......」

 「고사리형과 저는 이를 테면 함께 맞붙은 배추 모종이었습니다. 과장님, 그 배추 모종 중에서 하나를 뽑아 내기 위해서 얼마나 고민하셨습니까? 」

 「......」

 「얼마나 고민이 크셨음 뽑아서 버릴 수도 있는 것을 정성껏 꽃삽으로 떠서 딴 곳으로 옮기셨겠습니까? 토질 좋고 잘 자랄 수 있는 곳으로요....」

 「!」

 「시골에서 자연을 접하면서 좋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과장님!」

 

 그러고 나서 김군은 고사리를 향해 농 반 진 반으로 말했다.

 

 「고사리형, 두고 보자구! 지금은 비록 갖 옮겨져셔 시들시들하지만 앞으로 큰 배추로 성장할 적엔 어느 편이 나을지 그건 두고 볼 일이라구, 안 그래? 하하하 」
 

아차씨는 그만 감격하고 말았다.

 

 「마시세,마셔! 실컷 취하도록 마시는 거야, 오늘은!」

 「좋습니다!」

 「좋습니다!」

 「좋아!」

 

그들은 잔을 들어 푸짐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일월 서각 편 - 아차부인.재치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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