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부인   재치부인  


   

  
        
    [결혼 사진]

                                                                                朴 西 林

 

                         

 아차부인 어쩐 일인지 한숨을 내쉬며 넋두리를 늘어 놓는다.


 「이맘 때만 되면 한가지 고민이 생기지 뭐예요? 」

 「고민이 생기다 뇨? 」

 「건망증이 심한 남자를 남편으로 삼고 있는 아내의 고충이 이런 때 나타나는 거죠 뭐! 」
 

의아해 하는 재치부인에게 아차부인 한탄이다.

 

 「사실은 내일이 우리 결혼 기념일이거든요.」

 「아, 결혼기념일이군요!」

 「그러니 생각해 보시라 구요 이이가 이 날을 기억할 리 만무구, 그렇다고 옆구리 찔러 절 받기 식으로, 여보, 오늘 결혼기념일이유. 아셨죠? 이러기도 뭘 허구, 그러니 고민이 아닐 수 있느냐구요.」

 「호호 그 얘길 들으니 좀 딱하긴 하군요. 그 점에 관한 한 전 하나도 고민거리가 되지 않는데...」

 「안 그렇겠어요? 바우 아빠께서야 원체 애처가시니까 꼬박꼬박 기억해 주실 텐데...」

 「웬걸 요. 이이도 곧잘 잊어 먹는걸요.」

 「그럴 리가...」

 「그 치만, 아버님이 계시니까 그냥 넘기지는 못하죠! 이이가 잊을 경우엔 아버님께서 일깨워 주시거든요. 」

 「어머나!」

 「저번 결혼 기념일에도 아버님께서 이러셨다구요.」

 

 - 적어도 결혼기념일만은 꼭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이 날 만이라도 결혼식 때 사진첩을 꺼내서 펼쳐 볼 필요가 있어요. 신부 때의 그 젊고 꽃다운 아내의 모습과 살림 뒷바라지에 주름이 잡힌 지금의 아내의 모습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는 게지...뭔가 느끼는 바가 있을 거야.

 

 「아버님 말씀 듣구요, 우리 그이가 어찌나 미안해 하든지 제가 오히려 민망해질 정도더라니까요. 」
 

사진첩을 들쳐 본 재치씨,아내의 손을 꼳 잡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더란다.

 

 -여보 미안해 ,당신 그 때 그렇게 젊고 황홀하도록 아름다웠었는데, 나 때문에 그리고 바우 키우느라고 이렇게 시들어 버리다니! 미안해, 호강 못 시켜 줘서! 내가 못났지. 남의 집 귀한 딸 데려다가 고생을 시키다니....

 

 이 말을 들은 아차부인,

 

 「아유 그 얘기 들으니 어쩐지 코허리가 시큰해지네요.」

 「저도 어쩐지 뭉클해 지더라니까 요. 」

 「아이 그나 저나 전 그런 걸 일깨워 주시는 시아버님도 안 계시고, 어쩜 좋담!」       
 

하다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아차부인,

 

 「앗, 이렇게 하면 좋겠다!」

 

 집에 돌아온 아차부인 참으로 오래간만에 옛날의 사진첩을 꺼내서 먼지를 털었다.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바로 이 사진첩이야. 이 사진첩 첫머리에 우리 결혼 사진이 커다랗게 붙어 있거든! 후후, 이걸 내일 새벽, 아침을 지으러 나가면서 그이 머리맡에 슬쩍 놔 두는 거야. 그럼 이이가 무심코 사진첩을 들쳐 보겠지. 들쳐 보는 순간, 젊고 아리따운 나의 신부 때 모습을 보고, 지금의 나의 주름잡힌 모습과 비교해 볼 거다 그런 얘기야! 후후 그럼 자기라고  별 수 있겠어?


 -아, 내가 이거 무슨 짓이람, 남의 집 귀한 딸을 이 꼴로  만들어 놓다니....

하고는 아마,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쯤 슬프게 부를 거야. 호호호,」

 

  그러다가 문득 아차씨는 그 날이 바로 결혼기념일임을 기억해 낼 것이었다. 그리고 중얼거리겠지

 

 -안되지, 오늘은 기필코 그 동안의 무관심을 사과하는 뜻에서라도 저녁을  사주고 극장구경도 시켜 주고, 선물도 사 줘야지!   

 

  아차부인은 이렇듯 꿈에 부풀면서 사진첩 첫머리를 들쳐 보았다.

 

 「어디, 그 때 내 모습이나 다시 눈여겨볼까?」
 

그런데, 사진첩을 들쳐 본 아차부인...

 

 「에그머니 이,이 이럴 수가...」

 

 아차부인의 눈은 면사포를 쓴 자기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신랑 아차씨의 모습에 못 박히고 말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져 갔다. 그리고 뉘우침의 빛이 서서히 서리기 시작했다.


 「이런 줄은 차마 몰랐네. 이이가, 이 땐 이렇게 주름하나 없는 미남에다 반짝이는 눈,그리구 패기 만만하게 살짝 미소까지 짓고 있었는데, 근데 지금은 , 지금은....아이 가엾어라! 세상에 가엾게도....」
 

 이튿날 아침, 아차부인은 예측대로 남편이 결혼기념일을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을 나무라지 않았다.
 늦게 일어나 부랴부랴 출근준비를 서둘러도 잔소리 하나 안 했다. 그리고 바지를 갈아 입을 때, 새로 산 아주 질기고 멋있는 새 혁대를 손수 매 주었다. 아주 다정히...

 

 「아니 여보, 이게 웬 혁대?」

 「네 호호, 혁대가 하도 낡았길래 새거 하나 샀다우. 마음에 들우?」

 「응, 멋있는데! 야 난생 처음 이렇게 멋있는 혁대를 둘러보는 것 같아. 」

 「아이 그럼 다행이구려.」

 

 이때 밖에서 재치씨와 고사리씨가 어서 출근하자고 재촉하고 있었다.
 아차씨는 끝내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해 내지 못한 채 대문을 나섰다. 그래도 아차부인은 행복하게 웃는 낯으로 남편을 배웅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여보, 회사에 도착하는 대로 안 주머니에 든 쪽지 좀 읽어 보세요. 」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수야 있나, 아차씨 버스 안에서 슬쩍 쪽지를 읽어 보고는,

 

 「아니, 이,이럴  수가 !」

 

 쪽지에는 이런 정성스런 글이 담겨져 있었다.

 

  - 여보, 오늘이 우리 결혼기념일이에요. 그래서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을 다시 한 번 보지 않았겠어요?

그 순간 전 당신에게 얼마나 못 된 아내, 칠칠치 못한 아내임을 깨닫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답니다. 가엾은 양반, 당신의 그 패기 만만하던 모습이 오늘의 그 피곤한 모습으로 변한 것은 모두 처자식을 위해 고생을 무릅쓴 때문이 아니고 뭐겠어요? 그런 당신을 제대로 내조해주지 못하고 바가지만 긁었다니....
 여보 사과하는 뜻으로 오늘 저녁은 내가 사겠어요.  퇴근 무렵에 회사 앞 그 다방으로 가 있겠어요.」

 

                                     <박서림 방송꽁트집 아차부인.재치부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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